📚 10호. 마음을 잊어버리고 잃어버리고

2023. 3. 6.

교복을 입고 깔깔대는 학생들이 거리에 보이기 시작했어요. 점점 등교의 추억과는 멀어지고 있지만, 새로운 세상과 마주할 때의 두근거림은 여전한 건 같습니다. 제가 사는 제주도는 노란 유채꽃이 봄이 왔다고 말하네요. 곧 팝콘 같은 꽃잎도 흐드러지게 피겠지요.

이번 레터는 이른 봄 분위기를 담아봤어요. 따뜻한 계절을 기다리는 마음은 언제나 설레네요. 우리의 3월은 발걸음마다 좋은 일이 가득하길 바래요😊

📅 𝙱𝚘𝚘𝚔 𝙲𝚊𝚕𝚎𝚗𝚍𝚊𝚛

이달의 독서달력

2023년 2월 4주차~3월 1주차 독서달력입니다. 프리랜서들의 느슨한 연대와 지지 《프리낫프리 3호: 프리랜서의 느슨한 연대》(2022, 더스토리B), 그리움으로 빚어낸 진심 어린 사랑 『랑과 나의 사막』(2022, 현대문학), 가난한 마음을 채우는 사람의 따뜻한 호의 『자린고비』(2022, 문학동네), 시 모험가를 위한 따뜻한 안내서 『시를 쓰고 싶으시다고요』(2023, 달), 기록으로 발견한 나의 쓸모 『기록의 쓸모』(2020, 북스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게 하는 사랑의 힘 『모든 것들의 세계』(2022, 자음과모음), 대안을 찾는 청년들의 좌충우돌 촌라이프 『이상하고 아름다운 판타지 촌 라이프』(2022, 남해의봄날) 까지 총 7권을 완독했습니다.

* 빨간색 글씨를 클릭하면 자세한 도서 정보를 볼 수 있어요.

📝 𝚂𝚝𝚛𝚊𝚢 𝚝𝚑𝚘𝚞𝚐𝚑𝚝𝚜

쉼표와 따옴표

내가 좋아하는 스물다섯 풍경

여러분은 자기만의 방이 있나요? 버지니아 울프는 연간 500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방만 있다면 여성이 자유롭게 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정서적 안정을 돕는 조건이 삶에 필요하다는 뜻이에요. 안정감은 다음으로 도약할 힘을 주니까요.

저는 굵은 글씨로 안정감을 쓰는 사람입니다. 예민한 기질과 학습된 불안이 빚어낸 결과이죠. 그런데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단호히 말할 수 있어요. 사전을 찾아보면 안정은 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편안하고 고요함을, 안주는 현재 상황이나 처지에 만족함을 의미합니다. 엄연히 다른 개념이죠.

스스로 만든 사이클 내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 감당할 만큼함 변화하고 싶은 사람, 과정에서 얻은 성취감을 나누고 싶은 사람. 저는 그런 사람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빠른 흐름에 올라타면 순식간에 방전돼버려요. 어제와 오늘이 다른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로그아웃해 버리고 싶지요.

그럴 때 자기만의 방, 아니 카페로 달려갑니다. 저에게는 5년 넘게 들르는 자기만의 카페가 있어요. 이름은 스물다섯. 거기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도 하고, 멍하니 고민에 잠기기도 합니다. 나만의 이야기를 쓰는 기분이 들어요. 그렇게 머리를 식히고 집중하다 보면 일순간 주변이 고요해집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주변을 돌아보면 반쯤 식은 커피, 성실하게 돌아가는 시계, 웃는 얼굴 스티커가 붙여진 창문 너머로 계절이 눈에 들어와요. 새삼 이곳을 오랫동안 지켜온 힘이 느껴져 얼마 전 사장님께 편지를 썼어요.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고요.

때때로 일상의 소소한 기쁨도 느끼지 못하고, 삶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숨을 고르며 생각해요. '내가 찾는 안정은 잃어버린 게 아니라 잊어버린 거구나. 한동안 잊고 살았구나. 영영 잊기 전에 자주 떠올려야겠다'고요.

💬 𝙱𝚘𝚘𝚔 𝚌𝚘𝚖𝚖𝚎𝚗𝚝

이주의 독서리뷰

노인경 『자린고비』

생활 곳곳에서 오른 물가를 피부로 느끼는 요즘입니다. 필요한 물건도 가격에 흠칫 놀라 내려놓게 되더라고요. 여기 어려서부터 가난과 한식구처럼 살아온 사람이 있어요. 그녀의 이름은 자린고비입니다. 가난의 민낯을 너무 잘 알아서, 돈을 버는 성인이 되어도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버린 사람이지요.

고비 씨의 생활은 단순합니다. 하루에 두 끼 김밥을 먹고, 때 타지 않는 까만 옷을 사계절 내내 입으며,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어디든 걸어 다닙니다. 그림을 그려 돈을 벌지만, 특별히 자기 의견을 내지 않으며, 성실하고 정확히 마감일을 지키죠.

그런 고비 씨에게 자신의 것을 나눠주는 사람이 생겨요. 바로 십 년 가까이 그녀에게 일을 준 편집자입니다. 편집자는 만날 때마다 고비 씨에게 방울토마토, 오미자청, 배, 제사 음식을 줍니다. 한사코 사양하는 고비 씨에게 편집자는 대신 그림을 그려달라고 제안하죠. 지극히 평범하지만 한번 맛보면 계속 생각나는 사소한 음식들은 무채색인 고비 씨를 변화하게 만들어요.

고비 씨에게 호의는 갚아야 할 빚과 같았습니다. 비싸 보이는 빵을 건네는 편집자에게 '저 돈 많아요'라며 통장 잔고를 보여주던 그녀였으니까요. 하지만 점차 편집자와 만남을 기다리게 되고 자기 집에 초대해 고기도 구워 먹으며 사람 사이 온기를 느끼게 되죠. 흑백이던 고비 씨의 세상이 점차 색깔로 물들어 가요. 이것이 그림으로 표현되는 게 얼마나 뭉클하던지요. 계절이 지나도 황량하던 고비 씨의 주변이 알록달록 색칠되어 가는 부분은 꼭 보셔야 해요.

마지막에 고비 씨는 김밥보다 조금 비싼 떡볶이를 주문해요. 생각보다 푸짐한 재료에 놀라 '이거 4,500원이 맞냐'며 되묻죠. 그리고 '좋네요'라며 희미한 미소를 짓습니다. 누구에게나 자린고비 시절은 있어요. 읽는 내내 저의 스물, 스물일곱이 떠올랐습니다. 안 좋은 집안 사정으로 힘들었던 스무 살, 타지에서 처음 자취 생활을 했던 스물일곱 살은 계산기와 통장잔고를 닳도록 봤던 시절이거든요.

지금도 여전합니다. 500원 차이를 두고 핫이냐 아이스냐를 고민하고 중량과 성분을 따져가며 물건을 고르고 만듦새를 신중히 살피며 책을 구매하죠. 고비 씨도 마찬가지겠죠. 여전히 하루 두 끼 김밥을 먹고, 어제 입었던 까만 옷을 꺼내 입고,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닐 겁니다. 대신 어떤 날엔 분식집의 다른 메뉴를 주문해보고, 남들 사 먹는 커피도 마셔보고, 할인된 고기 한 팩 사서 저녁을 해결하기도 할 거예요.

이제 고비 씨는 나를 위한 행복을 살 때 덜 주저할 겁니다. 좋은 기억은 삶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노인경 작가님이 특별히 다른 걸 할 수가 없었던 때 쓴 글이 『자린고비』였다고 합니다. 독립 출판물로 먼저 나오고,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출간할 때 많은 부분을 더하고 그리셨대요.

『자린고비』의 비하인드가 궁금하다면, 채널예스 작가 인터뷰를 읽어보세요.

노인경 작가 인터뷰 보기

* 출처: 채널예스

📚 𝙻𝚒𝚋𝚛𝚊𝚛𝚢 𝙲𝚊𝚛𝚍

대출 희망합니다!

* 사진 출처: 교보문고, 유어마인드

3월 1주차에 신청한 희망도서는 『살아가는 책』, 『집의 일기』, 『나를 리뷰하는 법』, 『필연은 습관』세트,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 입니다.

📗 이은혜 『살아가는 책』 (2023, 마음산책)

인문출판사 글항아리 편집장 이은혜의 산문집입니다. 전작 『읽는 직업』에선 출판 편집에 관한 견해를 드러냈다면, 신작은 열성적 읽기와 곡진한 글쓰기의 장면을 담아냈어요. 읽었던 책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은 결국 먼 곳의 이야기를 제 안으로 불러들이는 작업입니다. 격주마다 책 편지를 쓰는 저의 모습과 닮았달까요.

📗 박성희 『집의 일기』 (2023, 책사람집)

EBS <건축탐구 집> '황혼의 집, 비탈에 서다' 편에 소개되어 많은 이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 박성희 작가의 에세이입니다.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집을 지은 건, 나를 위한 상이자 칭찬 그리고 여남은 생의 벅찬 순간으로 기록되지요. 높은 가격 때문에 적당한 방 한 칸도 얻기 힘든 현실에서 집이 지닌 본래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네요.

📗 김혜원 『나를 리뷰하는 법』 (2023, 유영)

기록 광인 <캐릿> 에디터 김혜원이 만든 '월간 인생 리뷰' 프로젝트입니다. 월말, 연말쯤 또는 취업, 이직을 준비할 때면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지난 활동을 회고해 보면 열심이던 내가 흐릿하거든요. 이런 사람을 위해 저자는 '나를 리뷰하는 12가지 방법'을 소개합니다. 조바심, 허탈감 대신 뿌듯함, 성취감으로 내 인생을 채울 수 있도록 말이죠.

📗 권누리 외 9인 『필연은 습관』세트 (2023, 유어마인드)

권누리, 김연덕, 박시하, 백은선, 오은경, 유진목, 이다희, 장혜령, 조해주, 한정원. 10명의 시인이 필연과 습관 사이 각자만의 지점에서 적은 글을 낱권으로 만들었어요. 책 속에서 같은 단어 혹은 문장은 쪽마다 반복되어 등장합니다. 희미하게 떠오른 문장의 실체는 페이지가 쌓이며 진해지지요. 무엇보다 내로라하는 시인들의 이야기를 시리즈로 볼 수 있단 게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 안미옥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 (2023, 문학동네)

문학동네 강윤정 편집자님의 리뷰를 보고 반해서 담은 시집입니다. 가만히 역동적으로 '많이 보는' 사람의 살아 있음에 대한 민감한 포착이 담겨있어요. "모두 말해야 정확하게 말한 것 같다 / 그러나 정확하지 않다 / 정확하지 않다고까지 말해야 더 정확한 것 같다"는 「선물」의 구절에 저도 진한 밑줄을 그어봅니다.

* 도서 설명은 출판사 서평을 참고해 작성했어요.
* 빨간색 글씨를 클릭하면 자세한 도서 정보를 볼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