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에 적히기 전, 자기검열로 글의 반 이상은 사라집니다. 사진은 보이는 그대로를 담아낸단 점에서 더 솔직하죠. 물론 사진도 보정이란 검열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피사체를 찍고 나서야 가능하니까요. 그래서 사진은 ‘자신을 위한 솔직한 일’이란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자는 바삐 살면서도 사진을 배우는 일을 멈추지 않아요. 컴퓨터 앞보단 암실에서, 천천히 형체의 윤곽을 익혀가는 눈처럼 한생을 걸쳐 천천히 그리고 오래도록 진행되는(p. 52) 배움의 감각을 익히죠.

어느 장면들이 설명 없이 쌓여가는 일이 다행스럽다.

이 모호하고, 과묵한 언어를 취미로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p. 107)

 그는 사진 유학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미학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쌓아두고, 사진에 대한 글을 쓰고, 사진가들의 전시를 찾아다니며 그 시절의 상상보다 근사해진 삶을 사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이루지 못한 꿈은 미련을 남기지만, 그렇다고 불행한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저도 글을 매만지는 삶을 꿈꿨지만, 좀처럼 쓰지 않는 시간으로 건너오며 지금의 삶도 생각만큼 나쁘지 않다고 느끼거든요. 

 하루에는 많은 말이 오가지만 제대로 쓰는 말은 없는 것 같습니다. 써버리는 순간 슬퍼질 때가 있어서, 쓰지 않고 두는 것들이 점점 더 늘어가는(p. 106) 어른에겐 사진이 필요해요. 초점을 맞춘 후, 숨을 참고 '찰칵' 셔터를 누르는 과정엔 나와 다른 모양들을 관찰하는 일이 포함돼 있으니까요. 그 증거는 선명히 남아 마음만 먹으면 함께 들여다볼 수 있죠(p. 128).

 존재의 흐릿함을 또렷이 붙잡은 저자의 사진들을 보며 언젠가 이처럼 생생한 글을 써 보고 싶단 바람도 생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