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호: 가을 끝자락에 찾아온 마니브러리

2022. 10. 30.

어느덧 10월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어요. 올해는 가을의 'ㄱ'자를 쓰자마자 지나간 기분입니다. 드디어 옷장 깊숙이 담아둔 가을옷을 꺼내나 했는데... 곧바로 니트를 입을 줄이야😅 아무래도 가을옷은 내년을 기약해야겠어요. 찰나가 된 가을을 보고 있자면 한해가 얼마 남지 않았구나, 실감이 나는 것 같아요. 계절 탓인지 10월에 읽은 책엔 유독 지나간 시간을 이야기하는 게 많네요. 겨울의 문턱에서 수서목록을 전해드리며, 우린 2주 뒤에 만나요🖐️

📅 Book Calendar

이달의 독서달력

2022년 10월의 독서달력입니다. 이달에는 전면개정판으로 돌아온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2022, 수박설탕), 자살 생존자의 애도일기 『세 번째 이별의식』(2022, 엑스북스), 내 사람을 위한 따스한 고백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2022, 수오서재), 섬세히 써내려간 시절마음 『애쓰지 않아도』(2022, 마음산책), 날카로운 인생의 단면을 보여준 『북샵』(2022, 북포레스트), 도서관 덕후가 쓴 여행일지 『도서관 여행하는 법』(2019, 유유), 두 시인이 나눈 시(時)대화록 『토끼는 언제나 마음속에 있어』(2022, 마음산책), 이찬혁이 탐구한 예술의 본질 『물 만난 물고기』(2019, 수카), 좋아하는 것들의 기록 『예진문의 취미기록』(2021, 책밥), 9년 만에 신작 소설집으로 돌아온 『이토록 평범한 미래』(2022, 문학동네), 마음에 창을 내어 들여다 본 『창문 너머 어렴풋이』(2022, 시간의흐름) <기획회의> 569호, 570호(2022,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까지 총 13권을 완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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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ray thoughts

쉼표와 따옴표

*출처: 신유진 『창문 너머 어렴풋이』中

신유진 작가는 『창문 너머 어렴풋이』에서 뒤라스의 『80년, 여름』을 읽고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쓸 수 있는 세계가 있다(p. 148)는 게 놀랍다고 얘기합니다. 뒤라스와 달리 저는 감탄과 여운으로 시작해 슬픔과 우울로 잉크를 낭비했습니다. 스물 초중반 일기장엔 암울한 이야기가 가득하지요. 그 무렵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같은 나락의 끝판왕을 다룬 책들에 빠져든 탓일까요. 그렇게 스스로 묵직한 어둠이 알맞은 사람이라 단정 짓고, 우울의 중량을 차곡차곡 적립해 갔습니다. 뒤늦게 착각이란 걸 알았지만요. 아직도 검은 빛의 터널을 빠져나온 계기는 잘 모릅니다. 다만 김연수 작가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 수록작 「난주의 바다 앞에서」를 읽으며 어렴풋이 깨달았습니다.

소설에선 '세컨드 윈드'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운동하는 중에 고통이 줄어들고 운동을 계속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는 상태'로 전환점을 뜻하지요. 인물들에게 불어온 바람은 새로운 출발을 도와줍니다. 어쩌면 제게도 세컨드 윈드가 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바람이 지나간 일기장엔 시시콜콜한 날들이 가득하니까요. 이젠 누구와 만나 밥을 먹었고, 어떤 대화를 나누었고, 헤어진 뒤 하늘은 무슨 색이었는지 사소한 일상이 소중합니다. 평범한 일상은 잘 쓰기란 어렵기에 귀합니다.

보통 초보 에세이스트에 일기를 쓰라 권합니다. 일기는 나만 보는 글이니까 시작이 쉽지요.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하는 찌질한 모습도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습니다만 그 자체가 에세이가 되긴 어렵습니다. 에세이는 남이 보는 글이니까요.

결국 글은 나에게서 타인으로, 우리로 흘러야 합니다. 고여있으면 고약한 악취를 풍기는 일기밖에 되지 못합니다. 내면일기가 익숙해지면 외면일기로 넘어가야 하는 이유이지요. 제가 에세이 코너를 만든 이유도 나에게서 벗어난 쓰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처음엔 엉성한 글도 회차를 거듭해가면 꽤 봐줄 만한 꼴을 갖추고 있겠죠? 앞으로 희망을 안고 뒤라스처럼 어떤 소재로도 거뜬히 문장을 완성하는 내가 되길 바라봅니다.

💬 Book comment

이주의 독서리뷰

문학동네 이달책 12: 김연수 『이토록 평범한 미래』

지금은 온전히 이해할 수 없겠다는 직감이 올 때가 있습니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도 그중 하나였지요. 박혜진 평론가는 "작가의 시선이 세계에서 개인으로 초점이 맞춰진 것 같다"고 언급합니다. 지구가 멸망할 거라는 예언으로 떠들썩한 1999년이 배경인 표제작 「이토록 평범한 미래」부터 비극적인 가족사를 낙관적인 역사로 다시 쓴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까지. 현재는 규정되지 않은 미래라는 걸 개인의 서사로 풀어내고 있거든요.

이번 소설집엔 시간에 관한 작가의 깊은 고찰이 담겨있어요. 여덟 편의 소설은 시간을 선형(線形)보다 원형(圓形)으로 인식하죠. 이 주제 의식을 잘 보여준 게 「이토록 평범한 미래」입니다. 여자친구 ‘지민’의 어머니가 쓴 소설 『재와 먼지』의 내용을 알기 위해 ‘나’와 지민은 편집자인 외삼촌을 찾아갑니다. 동반자살로 세 번의 인생을 다시 산다는 줄거리는 나와 지민의 미래를 예언하는 것 같아 소름이 돋지요. 둘은 죽지 않고 결혼해 과거를 회상하며 말합니다. 평범한 말의 시차가 놀라운 말처럼 들리게 했다고.

저는 소설의 허리 부분인 「난주의 바다 앞에서」와 「진주의 결말」이 좋았습니다. 「난주의 바다 앞에서」는 극한의 고통 끝에 찾아오는 바람 ‘세컨드 윈드’를 역사 속 인물 정난주의 삶에 대입해 희망을 재해석하고, 「진주의 결말」은 살인과 방화혐의를 받는 진주가 자신을 분석한 범죄심리학자 ‘나’의 해석을 반박하며 인생의 결말을 단정 지을 수 있는지 되묻지요. 벼랑 끝에 몰렸을 때의 마음가짐이 미래를 바꿀 수 있단 걸 극적으로 보여주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우리는 미래를 긍정과 부정, 두 형태로 상상합니다. 하지만 생각한 일은 벌어지지 않지요. 2000년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예언은 빗나갔고, 200년 전 사람들은 종교의 자유를 예상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러니 우리가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건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것을.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한 그 미래가 다가올 확률은 100퍼센트에 수렴한다는 것을(p. 34~35) 기억해야 합니다.

다 끝났다고 여겼을 때, 떠오른 가장 평범한 미래가 나의 내일입니다. 이것이 소설이 말하는 미래를 기억하는 방식일 겁니다. 새로 쓰일 시간의 페이지를 기약하면 차마 소설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었어요. 이 감상이 초라하다 느껴질 때면 이 책을 다시 펼쳐야 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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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희망합니다!

*글/사진 출처: 교보문고

10월 4주차에 신청한 희망도서는 『나 다운 게 뭔데』,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 『드라마의 말들』입니다.

📗김정현 『나 다운 게 뭔데』(2022, 알에이치코리아)

프리랜서 에디터 김정현은 나다움을 강조하는 이들에게 되묻습니다. 대체 나다운 게 뭔데? 그는 계산된 취향보다 무작정 뛰어든 경험에 의의를 두며, 건강한 열정과 애정을 품는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좋아 죽을 것 같은 존재가 너무 많아서 목록을 꾸린 '호모 목록쿠스'의 두툼한 서랍이 궁금하다면 한번 읽어보세요.

📗김병운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2022, 민음사)

김병운의 첫 소설집은 진실함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오랜 시간 자기 자신을 미워한 주인공들은 몸에 새겨진 수치와 혐오의 역사를 돌아보고, 자기혐오와 자기 검열 끝에 가면을 벗어던지기로 결심하지요. 용기를 낸 인물들의 손을 꼭 잡고, 그들의 세계로 함께 걸어가고 싶어집니다.

📗오수경 『드라마의 말들』(2022, 유유)

책 읽듯 드라마를 감상해 온 '드라마 관찰자'의 기록이 <말들 시리즈>로 출간됐습니다. 드라마는 친숙한 대중문화로 오랫동안 사랑받았지만 쉽게 폄하되고 무시당해 왔지요. 드라마가 변하면 우리 사회도 변합니다. 이 작은 변화를 느끼며 내 시청 이력을 톺아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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