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8일 차, 여러분의 계획은 어떠신가요? 저는 호기롭게 1일도 안 가 포기하고, 아직 음력 새해는 오지 않았다며 계획 수정에 나섰습니다. (12월 32일이라고, 33일이라고…) 천천히 목록을 살피면서 정말 지키고 싶은 '단 하나'를 찾아보려고요. 아직 2023년은 357일이나 남았으니 조급해하지 말자고요💪

📝 Stray thoughts

  새 다이어리를 펼치면 면지에 그해를 대변할 문구나 가사를 적습니다. 대체로 평안한 한해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싶어 플레이리스트 목록을 신중히 살피지요. 올해는 밴드 DAY6의 멤버 원필의 '행운을 빌어 줘' 후렴구를 적었습니다. 좋고 싫은 일들이 또 한껏 펼쳐지겠지만, 그래도 행운을 빌어보자는 희망찬 메시지가 마음에 들었거든요.

  2023년 1월 1일 0시, '행운을 빌어 줘'를 틀고 가사를 옮기다 불현듯 이전 다이어리에는 어떤 문장이 적혀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첫 페이지엔 다음의 문장들이 쓰여 있었어요. 

🎵2018년ㅣ"꽃잎이 번지면 당신께도 새로운 봄이 오겠죠 / 시간이 걸려도 그대 반드시 행복해지세요" (정승환 '눈사람' 中)

🎵2019년ㅣ"겉으로만 수백 가지 그 속엔 백만 가지 / 이유들로 네가 좋아 Baby / 해가 두 번 뜰 때까지 옆에 있어 줄래 같이 / 다 말해주고 싶어 / 네가 좋은 이유  Got millions millions millions / The reason I like you" (위너 'MILLIONS' 中)

 

✍️2020년ㅣ"나쁜 일보다 좋은 일이 더 많길 / 나쁜 말보다 좋은 말이 들리길 / 나쁜 사람을 좋은 사람들이 이겨내길 / 우리 인서들 마음고생 몸고생 좀 줄어들고 행복함이 현실의 힘듦보다 커지길 바라고 바람" (강승윤 트위터 中)

🎵2021년ㅣ"눈꽃이 떨어지면 거리는 밝아지고 / 우리는 그 속에서 춤을 추게 될 거야 / 불빛이 우릴 비추고 종소리가 들리면 / 우리는 이 겨울을 날아" (LUCY '난로' 中)

  

🎵2022년ㅣ"몇 번이고 지친 널 일으켜 세울게 / 다시 꿈을 꿔 멀리멀리 / 아직 못 오른 높이까지" (위키미키 'Siesta' 中)

  귀로 듣던 말을 손으로 직접 적고, 눈에 담으며 바람이 이뤄질 것 같던 순간. 그 속엔 나의 행복을 간절히 바라는 내용이 가득했어요. 달뜬 마음이 식고 지키지 못한 목록만 생각나는 새해 첫 주. 1일의 끄적거림을 떠올려봅니다.

  알라딘 북펀딩 페이지를 둘러보다 '우주 최초 MBTI 소설집'이란 카피에 시선이 갔습니다. 보자마자 "또 MBTI냐"와 "MBTI 소설이라니 재밌겠는걸"이란 생각이 동시에 들었지요. 고작 수십 개의 질문으로 사람을 단정 지어 버리는 이 검사, 환멸 나지만 소설적 허용으로 쓰이기 딱 좋다며 주저 없이 후원 버튼을 눌렀습니다.

  이번 소설집엔 16가지 유형 중, 6개 유형(INTJ, INTP, ENTP, ENFP, INFJ, INFP)의 인물이 등장해요. "혹시 MBTI가...?"란 안부 인사가 만연한 현실이 실감 나게 묘사되어 읽는 내내 입꼬리가 올라갔어요. 주인공들은 상극인 MBTI 때문에 차이고(디나이얼 인티제), 내향형 인간인 게 들켜 면접에서 탈락하고(알고 싶은 마음), 생각만 하다가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나 여기 있어), '원래 T유형이 그렇다'며(도도의 단추) 재단 당하거든요.

  과연 여섯 편의 이야기가 완벽하게 '그 유형'을 대표할 수 있을까요? 이들은 MBTI란 껍질을 덮고 있지만, 결국 '관계의 불확실성'을 파헤쳐요. 서로 배려하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일(p.19)이 힘들어서 성격에도 맞춤한 이름이 있기를 바라(p. 37)고, 바쁘다는 핑계로 사람을 천천히 알아갈 시간을 빠르게 스킵하는 현대인의 모습이 투영돼 있죠. 뚜렷한 정답이 없는 물음에 MBTI는 얼추 비슷한 해답을 줘요. '그 사람과 나는 상극이네', '내가 INFJ라서 사회성이 떨어지는 거구나', '나는 J형이고 너는 P형이니까' 하며 나름의 관계성을 파악해가죠. 

  저는 INTJ이지만, INFP를 다룬 「나 여기 있어」에 깊이 공감했어요. 화자 지원은 자기 생각에 빠져 솔아의 물음에 답을 해주지 않아요. 의도치 않게 상대를 밀어내 버린 지원은 여러 부침을 겪고서야 뒤늦게 솔아의 입장을 헤아리게 되죠. 나는 솔아에게 그저 말을 건네지 않는 사람, 건넨 말을 되돌려 주지 않는 사람(p. 210)이라는 진실을 깨달았을 때, '나도 그랬다'며 지원을 꼭 안아주고 싶었어요. 

  누군가를 알고 싶은 마음은 잘못된 게 아니에요. MBTI도 상대를 향한 관심 표현 중 하나겠지요. 대신 서로의 성벽이 허물어지면 얼굴을 마주 보고, 마땅한 시간을 들여 각자의 세계를 알아보는 건 어떨까요. 분명 검사지보다 풍부한 세계를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요즘 알고리즘에 빈번히 보이던 책입니다. 빈민 지역에서 자랐던 저자가 가난의 구성 요소를 하나씩 분석해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지요. 각종 미디어에서 비춘 가난의 상(狀)이 상품이 된 지금, 민낯을 마주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정확히 읽지 못해서 생긴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언어학자인 저자는 최신 연구를 통해 디지털 시대에 올바른 읽기 교육을 제안합니다. 디지털 전환기, 여러 매체와 플랫폼의 홍수 속에서 우린 어떻게 읽고 가르쳐야 할까요.

 '전쟁의 시대'에 만들어졌다가 기능이 정지된 채 사막에 파묻혀 있던 로봇 '고고'에게 생명을 준 인간 '랑'이 사망하자, 랑이 가고 싶어 했던 과거로 가는 땅을 찾아 고고가 홀로 길을 떠나는 이야기.  소개문을 읽자마자, 영화 <월-E>가 떠올랐어요. 이브를 통해 변한 '월-E'처럼, '고고'의 마음은 어떻게 성장할지 궁금해지네요.

 저자는 퇴사 후 삶의 다른 가능성을 찾아 나서며, '진짜 가지고 싶은 시간'을 적어봅니다. 유독 "다들 이렇게 살아"라는 말에 '다들'은 무사한 건지 라는 발췌문에 눈길이 갔어요. 저도 입버릇처럼 '바쁜 것만 끝나면'을 달고 사는지라, 어째서 이런 말들을 당연하게 여기게 된 건지 책을 읽으며 생각해 보려고요.

우리는 의외로 자신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어떤 계기로 그걸 깨달으면 깜짝 놀라고 마는 것이다.

『혹시 MBTI가 어떻게 되세요?』, 「알고 싶은 마음」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