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호. 힘이 닿는 한 좋은 마음

2023. 5. 1.

간만에 월요병이 없는 하루입니다. 청명한 하늘을 보자마자 집에 있겠단 계획을 취소하고 밖으로 나섰어요. 해바라기하며 이어폰 속 노래를 흥얼거리니 마음이 들뜨더군요. 춘곤증으로 쓰러지듯 잠들던 날이 무색할 만큼 더없이 맑고 또렷한 정신이 듭니다. 멜랑콜리한 4월이 가고 여름의 서막을 알리는 5월이 왔어요. *힘이 닿는 한 좋은 마음으로 새로운 달을 맞이해 봅니다.

📮 개인 사정으로 <마니브러리> 15호는 5/20(토)에 발행됩니다.

* 하현상 'Good Night' 가사 인용

📅 𝙱𝚘𝚘𝚔 𝙲𝚊𝚕𝚎𝚗𝚍𝚊𝚛

이달의 독서달력

2023년 4월 4주 차 독서달력입니다. 연필에 얽힌 다채로운 서사 『아무튼 연필』(2020, 제철소), 일상을 지키고 가꾸려는 100개의 다짐 『습관의 말들』(2020, 유유), 크고 작은 슬픔이 가진 가능성 『슬픔의 방문』(2022, 낮은산), 오래된 동네 그리고 이웃들을 향한 애틋한 기록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2022, 창비)까지 총 4권을 완독했습니다.

* 빨간색 글씨를 클릭하면 자세한 도서 정보를 볼 수 있어요.

📝 𝚂𝚝𝚛𝚊𝚢 𝚝𝚑𝚘𝚞𝚐𝚑𝚝𝚜

쉼표와 따옴표

허수경 '농담 한 송이' 中

4월 말 슬픈 소식이 연일 들려왔습니다. 그들을 추모하듯 비가 자주 내렸고, 냉한 기운이 감돌았어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달라질 거 없는 기사의 새로고침을 계속 눌렀습니다. 2017년 12월 그때처럼요.

잠귀가 밝고 예민해 불면증을 오래 앓았어요. 낮이면 괜찮던 소리가 밤이면 소음으로 둔갑하던 시간, 저를 달래준 건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 <푸른 밤>입니다. 성시경의 '잘 자요'란 클로징 멘트로 유명한 프로지요. 저는 '정엽'이 DJ일 때부터 듣기 시작했어요. 수면에 알맞은 주파수를 가진 그의 음색을 들으면 마음이 안정됐지요.

그래서 정엽의 하차 소식을 들었을 때 난감했습니다. 그의 후임은 샤이니의 '종현'이었고, 당시 저를 포함한 다수의 청취자가 옅은 편견을 가지고 종현의 첫 방송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우려를 의식한 듯, 종현은 '멤버들을 게스트로 부를 일은 없다'고 선언했고, 피드백을 수용하며 어울리는 톤을 찾아갔어요. 시그널 송은 물론 <*푸른 밤 작사 그 남자 작곡> 코너의 곡까지 손수 만들어 들려주기도 했고요. (*해당 코너의 곡은 앨범 '소품집'으로 발매됐습니다.)

그의 열정과 노력은 금세 믿음을 주었고, 저는 20대 초반의 불안정한 마음을 종현의 푸른 밤에서 달랬습니다. 자그마치 3년 동안 그는 오늘과 내일 사이를 성실히 지켰어요. 깊은 사유와 성찰이 묻어난 말들에 기대 울던 시간이 선연하던 그해 겨울, 부고를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의 팬은 아니었지만 하루 끝을 빚진 사람으로서 한동안 슬프고 미안하고 우울했습니다.

비슷한 일이 반복될 때마다 변하지 않은 세상에 분노했습니다. 최근의 이별은 남 일 같지 않았어요. 떠난 이는 26세. 제가 인생의 가장 큰 좌절을 맛봤던 나이이자 현재 열렬히 응원하는 가수의 나이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팬들의 눈물 젖은 편지가 올라올 때마다 '나라면 어땠을까'를 상상하며, 파도처럼 밀려온 복합적인 감정에 젖어갔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야속하게 흘러갑니다. 감정은 날씨와 같아 맑고 흐리길 반복하지요. 살아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몫까지 건강히, 잘 살아내기 같아요. 애도 기간을 보내는 모든 분이 마음을 잘 추스르길 응원합니다.

💬 𝙱𝚘𝚘𝚔 𝚌𝚘𝚖𝚖𝚎𝚗𝚝

이주의 독서리뷰

장일호 『슬픔의 방문』

장일호 기자는 삶에서 목도한 슬픔을 우아하고 씩씩하게 그립니다. 구체적인 슬픔의 장면들이 그을 향해 걸어와요. 스스로 세상을 등진 아버지, 홀로 자신을 키워야 했던 어머니. 떨어질 줄 모르던 가난의 그림자와 폭력에 노출된 환경, 성폭력의 흔적과 암 환자란 정체성. 저라면 무너지고 말았을 날카로운 파편들은 슬픔을 소화하도록 저자를 단련시키죠.

세상이 너무 무서워서, 그만큼 간절하게 궁금하고 이해하고 싶어서 읽고 쓰는 사람(p.7)이 된 장일호는 슬픔의 현장을 취재합니다. 평생 들어 보지 못했던 예쁜 말만 해줘서 교회에 다닌다는 할머니, 대학 졸업장이 없어 비정규직 일자리를 전전하는 여성들, 끔찍한 성폭력의 고통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 역내 엘리베이터 설치를 위해 지하철 시위를 이어가는 장애인의 목소리를 받아 적습니다. 더(more)와 덜(less)의 차이가 있을 뿐 슬픔의 얼굴은 비슷하다고 말이에요.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다가도 슬픔이 묵직하게 방문하면 마음 둘 곳을 몰라 서성인다.

가능하면 몰려오는 감정을 피하지 않고 맞선다.

(p. 80)

그는 슬픔이 전부가 아니란 걸 압니다. 그래서 숨통을 조이는 이를테면 가난, 폭력, 죽음, 차별 뒤에 숨은 선입견을 들추며 한마디 거들어요. 기자 선배들이 가르쳐 준 대로 타인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는 쪽으로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마음을 정확히 셈해 갚기보단 아직 서툰 타인을 위해 내어 주면서요.

살아가는 일이 살아남는 일이 되는 세상에서 비슷한 아픔을 지닌 이의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자처럼 슬픔을 정확히 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오래 읽고 써보려 합니다.

<양브로의 정신세계>에선 상실을 겪은 사람은 우울증의 양상과 비슷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얘기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요.

감정은 검열보다 돌봄이 필요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충분히 슬퍼하는 애도 기간을 아까워하지 말아요.

<양브로의 정신세계> 보기

* 출처: 양브로의 정신세계

📚 𝙻𝚒𝚋𝚛𝚊𝚛𝚢 𝙲𝚊𝚛𝚍

대출 희망합니다!

* 사진 출처: 교보문고

4월 4주차에 신청한 희망도서는 『책에 대한 책에 대한 책』, 『다시 앉는 밤』, 『오늘부터 내 그릇을 키우기로 했다』, 『햇빛 마중』, 『이끼숲』 입니다.

📗 금정연 외 7인 『책에 대한 책에 대한 책』 (2023, 편않)

책과 출판의 세계에 속한 8명의 저자들이 각자 '책에 대한 책(들)'을 고르고 읽은 후 쓴 글을 엮은 서평 에세이집입니다. 책들은 또 다른 책들의 세계와 연결되며 독서의 세계를 확장해요. 책을 좋아하고, 서평을 찾아 읽고, 책이라는 매체 또는 출판계 사람들이 궁금하다면, 다 필요 없고 그냥 책이 좋다면 이상하고 아름다운 여덟 가지 세계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요.

📗 용윤선 『다시 앉는 밤』 (2023, yeondoo)

커피와 요가, 책을 사랑하는 용윤선은 쓸 수 있는 말을 담아 편지를 씁니다. 담담한 고백의 발신자는 기형도 시인, 자신이 좋아한 커피인 예가체프, 사랑하는 선생님과 스님, 작가와 음악가이지요. 쓸 수 있는 말을 찬찬히, 그리고 담담히 살고 있다는 증명이라 확신한 저자의 시간을 마주하려 합니다.

📗 이진아(큰그릇) 『오늘부터 내 그릇을 키우기로 했다』 (2023, 카멜북스)

트위터에서 수만 팔로워와 응원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열심을 지지하던 큰그릇님이 출간했습니다. 집안의 빚으로 막막했던 큰그릇님이 어떻게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 꿈을 이뤘는지가 담겼어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단 말을 증명한 큰그릇님. 팔로워 중 한 명으로 그의 이야기가 너무 궁금하네요.

📗 문진영 『햇빛 마중』 (2022, 마음산책)

일상 속 얼굴들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문진영 작가의 짧은 소설입니다. 작가는 '다양한 빛깔로 물든 이 소설은 우리 모두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중'이라 해요. 관계의 다채로운 국면과 이색적인 시공간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낭만적인 쓸쓸함을 엿보게 하지요. 햇살 좋은 날, 우연히 마주친 문장의 매력을 여러분께 고스란히 전하고 싶어요.

📗 천선란 『이끼숲』 (2023, 자이언트북스)

세 편의 연작소설은 지상이 멸망한 후 지하 도시로 추방된 인류의 미래를 배경으로, 여섯 명의 친구가 함께하는 사랑과 우정, 모험을 그려냅니다. 특히 표제작 「이끼숲」은 애도가 깔끔하게 완료되길 바라는 사람들에게 저항하듯 오랜 슬픔과 마주하게 해요. 천선란만이 쓸 수 있는 '구하는 이야기'로 안도감과 든든함을 전하면서요.

* 도서 설명은 출판사 서평을 참고해 작성했어요.
* 빨간색 글씨를 클릭하면 자세한 도서 정보를 볼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