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호. 나를 바꾸는 사랑

2023. 5. 20.

📚 15호. 나를 바꾸는 사랑

예고한 대로 조금 늦은 토요일에 찾아온 <마니브러리>입니다. 여름의 초입에 들어선 5월은 무척 덥네요. 저는 준비하는 게 있어 더위와 일정에 허덕이며 보냈어요. 바쁜 와중에도 저를 웃게 만드는 것이 있었다면 바로 덕질이었죠.

저는 사랑이란 말을 믿지 않는 사람이에요.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사랑이 휘발되는 것 같달까요. 그런데 또 소진된 기력에 불을 지피는 건 누군가를 사랑하고 응원하는 마음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 호는 나를 북돋게 해주는 사랑 방식, 덕질의 요모조모에 관해 얘기하려 해요. 여러분도 열렬히 응원하는 대상을 떠올리며 읽어주세요😎

📅 𝙱𝚘𝚘𝚔 𝙲𝚊𝚕𝚎𝚗𝚍𝚊𝚛

이달의 독서달력

2023년 5월 3주 차 독서달력입니다. 꿈에서 시작된 매혹적인 이야기 『그림자와 새벽』(2022, 시간의흐름), 미니멀리스트 '단순한 진심'의 소소익선 에세이 『작고 단순한 삶에 진심입니다』(2022, 위즈덤하우스), 스타 고양이 '히끄'와 아부지의 제주 생활기 『제주탐묘생활』(2023, 야옹서가), 독립된 성인으로 발전하는 모녀의 성장 여행 『눈이 올 정도로 추운지』(2023, 엘리), 상실에서 피어난 가능성의 회복 『고고의 구멍』(2023, 허블), 장마처럼 눅진한 불운들의 행진 『비행운』(2012, 문학과지성사), 좋아하는 일을 나다운 방식으로 하는 법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될 수 있을까』(2022, 니터), 나를 살리고 사랑하는 덕질의 즐거움 『좋아하는 마음이 우릴 구할 거야』(2020, 휴머니스트)까지 총 8권을 완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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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𝚂𝚝𝚛𝚊𝚢 𝚝𝚑𝚘𝚞𝚐𝚑𝚝𝚜

쉼표와 따옴표

5월 13일 토요일, Beautiful Mint Life 2023(이하 뷰민라)에 다녀왔습니다! 뷰민라는 매년 5월 열리는 대형 야외 뮤직페스티벌이에요. 저는 2021년에 처음 뷰민라를 즐겼습니다. 당시엔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 때문에 지정석에서 함성도 지르지 못했는데, 2년 만에 찾은 뷰민라는 모든 제한이 해제되어 설레더군요.

제게 뷰민라는 특별한 이벤트입니다. 어릴 때부터 정말 가고 싶은 공연이었거든요. 인디 음악에 미쳐있던 고딩은 수능 공부가 힘들 때마다 소란, 데이브레이크 등 좋아하는 밴드의 뷰민라 직캠 영상을 보며 버텼습니다. 대학에 진학하면 꼭 현장에서 라이브를 들어야지 다짐하면서요. 하지만 대학생이 되어도 가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섬에 사는 지방팬에겐 티켓 말고도 비행기와 숙소 등 추가 경비를 감당할 여력이 없었고, 그렇게 뷰민라는 서서히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는 듯했어요. 2021년 라인업에서 '호피폴라'를 보기 전까진요.

호피폴라(아일, 하현상, 홍진호, 김영소)는 JTBC 밴드 결성 프로그램 <슈퍼밴드>의 초대 우승팀입니다. 드럼, 베이스 리듬 악기 대신 첼로, 기타, 투 보컬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죠. 저는 본방 사수부터 문자 투표까지 열정을 불태웠어요. 하지만 코로나가 터지며 첫 단독 콘서트가 기약 없이 밀리고, 겨우 열린 콘서트마저 이사 때문에 갈 수 없게 되자 무척 우울했죠.

이후, 건강이 나빠지며 급작스러운 변화까지 겪자 공황증세가 찾아왔어요.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때, 뷰민라 라인업에서 ‘호피폴라’를 발견했죠. 그렇게 7년 만에 첫 뷰민라를, 좋아하는 밴드의 첫 라이브를 즐기게 됐습니다.

전 아직도 그날 잔디광장에 울려 퍼진 'Opfern'의 첼로 도입과 'About Time' 시작을 알리는 현상의 "1, 2, 3, go!" 구호. 오직 공연에서만 볼 수 있는 영소의 'Let's' 기타 솔로 타임, '너의 바다' 공연 때 걷힌 비구름과 선선히 불어오던 바람, 앵콜곡 'Wake Me Up'의 시그니처 퍼포먼스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때의 기억은 삶이 힘들 때마다 꺼내 먹는 비타민이 되었죠.

이번에는 호피폴라의 멤버인 하현상의 무대를 보러 뷰민라에 갔어요. 개최 3개월 전에 예매한 터라 "제발 당일에 급한 일정이 생기지 않게 해달라"며 간절히 기도했지요. 새벽 비행기를 타고, 숨 막히는 9호선 인파를 뚫고, 미친 듯이 긴 대기 줄을 넘어 잔디공원에 돗자리를 펴고 나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이 터지더군요.

뙤약볕에 땀은 비 오듯 쏟아지고 팔다리는 새빨갛게 익었지만, 최근 발매된 정규앨범 <Time and Trace>의 곡을 눈과 귀로 담을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관객들 호응이 좋아서 현상 본인도 무척 신난 게 보여 덩달아 기뻤지요. 무엇보다 마지막 곡인 '파도'의 감동이 너무 심했어요. 음원은 스트링으로 마무리해 천천히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느낌인데요. 그 부분을 밴드 버전으로 편곡해, 2분 동안 무아지경으로 연주하는데 마치 해일처럼 밀려드는 파도에 속절없이 잠기는 듯했거든요. 그 짧은 순간이 강렬해서 이 곡을 들으러 다시 공연에 가고 싶어졌죠.

뷰민라의 기억은 당분간 저를 살게 할 거예요. 비록 흔들린 사진과 먼발치에서 찍은 저화질의 영상만이 남았지만, 이들은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찬란한지 보여주죠. 그래서 공연은 고화질 카메라 같아요. 공연장 안에선 저란 사람이 유독 선명해지거든요. 앞으로도 온몸으로 흡수되는 추억을 사는 일은 멈추지 않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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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𝙱𝚘𝚘𝚔 𝚌𝚘𝚖𝚖𝚎𝚗𝚝

이주의 독서리뷰

정지혜 『좋아하는 마음이 우릴 구할거야』

저의 덕질사는 유구합니다. 피아노로 시작해 책과 아이돌을 거쳐 밴드로 이어진 꼬불꼬불한 길은 저조차도 무슨 취향인지 가늠되지 않아요. 하나 확실한 건, 이들이 있었기에 힘든 고비를 이겨낼 수 있었단 겁니다.

좋아하는 것을 보면 입이 근질거릴 때가 있죠. 『좋아하는 마음이 우릴 구할 거야』에는 봇물 터지듯 영업을 멈출 수 없는 행복이 덕지덕지 붙어있어요. 아이돌을 향한 사춘기 시절 맹목적인 충성,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고 싶은 청년의 푸릇한 일념, 남의 시선과 평가에 마음을 몽땅 소진한 사회인의 피로까지. 무언가에 마음을 빼앗겨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가득하죠.

작가님은 책이 좋아서 서점원이 되었지만, 사람에 치이며 번아웃을 겪게 됩니다. 불행이 행복을 앞지를 즈음, 결국 하던 일을 멈추고 쉬게 되죠. 그때 방탄소년단의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고 입덕합니다. 서른 넘어 시작한 덕질은 모든 게 새롭습니다. 런던 스타디움에서 열린 콘서트를 보기 위해 생애 처음 혼자서 유럽 여행도 하게 되죠. 과거의 나라면 절대 안 했을 일들을 방탄소년단 덕분에 시도합니다. '시작할 용기'를 갖게 된 거죠.

모두에게 이해받을 수 없을지는 몰라도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합니다. 저는 인생에서 가장 호사스러운 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열렬하게 사랑할 수 있는 날이 단 한 순간이라도 있다면 그 삶은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 그러니까 우리, 더 많이 사랑해요. (p. 61)

화려한 삶을 사는 듯 보이는 방탄소년단도 인터뷰를 통해서 매 순간 흔들리는 사람임을 고백합니다. 이를 통해 작가님은 우린 완벽한 인간이 아님을, 언제든 변하고 휩쓸리는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하게 되죠. 이 어려운 걸 덕질이 해냅니다.

저는 요즘 최애가 운동 앱 챌린지를 맡아서 매일 2km씩 걷고 있습니다. 운동이라면 치를 떨던 사람인데 벌써 2주 차에 접어들었어요.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변화입니다. 이처럼 좋아하는 마음은 튜브가 되어 가라앉는 나를 구해줘요. 최애를 향한 사랑은 고스란히 돌아와 나를 살리고 사랑하게 만듭니다. 덕질을 하며 일상의 순수한 즐거움이 하나둘 늘어가는 경험은 내 사랑의 몸집을 덩달아 키워요. 덕후의 사랑은 결국 덕후 자신을 바꿉니다.

삶의 풍파를 홀로 견디기엔 외롭잖아요.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는 두렵고요. 그럴 때마다 기댈 곳이 있으면 존재만으로 든든합니다. 꼭 덕질할 대상이 사람일 필요는 없어요. 책, 음악, 영화 요즘은 농구와 야구처럼 스포츠까지 덕질할 거리는 넘쳐납니다. 우리의 덕질이, 좋아하는 마음이, 사랑의 방향이 보다 선명하고 단단해지길 응원합니다.

나 좋자고 하는 덕질이 상처가 될 때도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최애가 범죄자가 된 경우가 아닐까요. 오세연 감독님은 가수 정준영의 오랜 팬이자 성덕입니다. 나의 행복이 불행이 된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 <성덕>과 에세이 『성덕일기』 만들었죠.

죄책감은 좋아했던 걸 부끄럽게 만든 이들이 가져야 합니다. 사랑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이 영상을 필수로 시청하면 좋겠네요.

<유퀴즈 오세연 편> 보기

* 출처: 유퀴즈 온 더 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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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𝙻𝚒𝚋𝚛𝚊𝚛𝚢 𝙲𝚊𝚛𝚍

대출 희망합니다!

* 사진 출처: 교보문고

5월 3주차에 신청한 희망도서는 『나 좋자고 하는 일인데요』, 『내일은 완성할 거라는 착각』,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 『맡겨진 소녀』, 『눈부신 안부』 입니다.

📗 고재형 외 6인 『나 좋자고 하는 일인데요』 (2023, 뜨인돌출판사)

자기 일에 얼마나 만족하고 계신가요? 어쩌면 우린 많은 타협과 선택으로 실패를 피해 왔는지 모릅니다. 여기 일잘러 7인이 있습니다. 이들은 회사가 아닌 나에게 충성하며 반 발짝 앞서 내 일을 찾아가요.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일터를 선택한 사람에게는 어떤 건강한 마음이 깃들어 있을까요? 7인의 이야기에서 이정표를 발견하면 좋겠네요.

📗 염승숙, 윤고은 『내일은 완성할 거라는 착각』 (2023, 세미콜론)

출판사 세미콜론에서 선보이는 음식 에세이 시리즈 '띵'의 스물두 번째 주제는 '소설가의 마감식'입니다. 이 책은 등단 이후 꾸준히 소설을 쓴 두 작가의 팟캐스트 <테이블>의 '쓰는 동안, 입은요?' 편으로부터 시작됐어요. 소설가가 마감할 때 먹는 음식,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창작의 고통을 순화하는 음식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김상욱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 (2023, 바다출판사)

<알쓸인잡>의 다정한 물리학자 김상욱의 신간입니다.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서 영감을 받은 제목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싶었던 저자의 마음이 담겼죠. 물리학의 경계를 넘어 원자에서 인간까지, 삶 속의 과학을 멋지게 그린 건 물론 현대 과학의 거의 모든 지식을 전하며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교양을 제시합니다.

📗 클레어 키건 『맡겨진 소녀』 (2023, 다산책방)

다가오는 5월 31일 개봉을 앞둔 영화 「말없는 소녀」의 원작 소설입니다. 어느 여름 친척 집에 맡겨진 소녀가 그곳에서 처음으로 다정한 돌봄과 사랑을 받는 이야기를 그렸어요. 자기 손을 잡고 보폭을 맞춰 걸어주는 어른을 만나, 혼란과 결핍을 느끼게 된 소녀. 찬란한 여름을 경험해 본 아이의 인생은 어떻게 변할까요.

📗 백수린 『눈부신 안부』 (2023, 문학동네)

제가 좋아하는 작가 백수린의 첫 장편소설입니다. 비극적 사건을 회피하려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인해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던 한 인물이 자기 자신과 진심어린 화해를 결심하는 과정이 담겼어요. 화해라는 쉽지 않은 발걸음을 다정하고 진중하게 그려낸 점이 인상적입니다. 슬픔의 터널을 지나 쏟아지는 환한 빛과 같은 소설을 저의 경험에 빗대보며 읽고 싶네요.

* 도서 설명은 출판사 서평을 참고해 작성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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