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호. 빛바랜 여름의 추억

2023. 7. 24.

📚 20호. 빛바랜 여름의 추억

제주는 어항 속 물고기가 된 듯 높은 습도와 푹푹 찌는 폭염이 연일 이어졌어요. 시원한 곳으로 떠나는 여름휴가가 무척 그리워질 타이밍입니다. 여러분은 여름마다 그리운 추억이 있나요? 저는 차가운 할머니 집 마룻바닥이 생각나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때로 잠시 돌아가고 싶을 만큼, 그 집 옥상에서 보이는 바닷가마을의 정경이 참 좋았거든요.

이번 주 마니브러리는 빛바랜 여름 추억을 꺼내보려 합니다. 무릎 베게 하고 머리카락을 사락사락 넘기던 다정한 손길을 한번 느껴보길 바라요.

📅 𝙱𝚘𝚘𝚔 𝙲𝚊𝚕𝚎𝚗𝚍𝚊𝚛

이달의 독서달력

2023년 7월 4주 차 독서달력입니다. 담담히 적어 내려간 쓰기의 러브레터 『다시 앉는 밤』(2023, yeondo), 어둠 속에 숨죽인 유년기의 그림자 『여름과 루비』(2022, 은행나무), 동경하는 세계를 향한 아름다운 이야기 『온 여름을 이 하루에』(2017, 아작), 정겨운 할머니 집으로의 여름휴가 『여름의 루돌프』(2023, 사계절), 머물며 그린 단정한 제주의 색채 『제주를 그리다』(2016, 버튼북스) 까지 총 5권을 완독했습니다.

* 빨간색 글씨를 클릭하면 자세한 도서 정보를 볼 수 있어요.

📝 𝚂𝚝𝚛𝚊𝚢 𝚝𝚑𝚘𝚞𝚐𝚑𝚝𝚜

쉼표와 따옴표

영화 <바다의 뚜껑>

거의 모든 가게가 문을 닫는 일요일, 집에 콕 박혀 영화 한 편을 봤습니다. 여름마다 찾아보는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틀려다 그 옆의 <바다의 뚜껑>이 눈에 들어왔어요. 요시모토 바나나의 원작 소설을 재밌게 읽은 터라 영화도 궁금해서 작은 모험을 감행해 봤습니다.

<바다의 뚜껑>은 쇠락한 바닷마을에서 만난 '마리'와 '하지메'의 우정과 치유를 그린 작품이에요.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고향으로 돌아온 마리, 화마 속에서 자신을 구한 할머니의 죽음으로 깊은 상실감을 느낀 하지메가 작은 빙수 가게를 함께 운영하며 겪는 소담한 이야기를 다루죠.

유독 두 주인공이 힘껏 껴안는 장면이 자주 등장합니다. 서로의 어깨를 빙 둘러 껴안는 행동엔, 너의 상처를 내가 보듬어 줄 수 있다는 포근한 온기가 전해져요. 찐한 우정에 가슴이 찌르르 간지러웠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바다가 두려운 하지메를 천천히 인도하는 마리의 모습이에요. 모래밭에서 망설이는 하지메에게 "괜찮아, 바다는 상냥하다"고 안심시키는 마리의 편안한 미소가 좋아서 계속 돌려봤습니다.

마리의 손을 꽉 부여잡고 한발 한발 바다로 내딛는 하지메. 화상 흉터에 닿는 바닷물이 따가울 텐데도 환하게 웃는 걸 보며 왠지 모르게 묵은 체증이 녹는 듯했습니다. 흉터 따위가 날 가두지 못한다는 확언처럼 느낀 건 기분 탓일까요. 아픔을 딛고 선택한 길을 의연히 걸어가는 두 사람을 보며, 나도 저런 사람이 돼야겠단 생각을 해봅니다. 높은 둑을 허물고 과거가 흐르게 물길을 틀어, 조용히 강한 마음이 스미기를 소망합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조그마한 바닷가 마을 카마쿠라에 사는 세 자매가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만난 이복 여동생을 가족으로 들이며 벌어지는 따뜻한 이야기를 다뤘어요.

가족으로 인한 상처가 있지만 서로를 보듬고 돌보며 아픔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네 자매의 모습이 마음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죠.

여기가 내 자리가 맞는지 고민될 때, 한번 꺼내 보세요.

🎥<바닷마을 다이어리>보기

* 출처: 네이버영화

💬 𝙱𝚘𝚘𝚔 𝚌𝚘𝚖𝚖𝚎𝚗𝚝

이주의 독서리뷰

김성라 『여름의 루돌프』 (2023, 사계절)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물으면 "여름이요!"라고 해맑게 답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여름방학도 없이 치솟는 온도를 견딜 거라 상상도 못 하던 어린 날의 이야기지요. 그래도 여름이 그리운 건, 잊지 못할 추억 대부분이 이 계절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에어컨은 없지만 하늬바람이 불어오던 할머니 집 북쪽 방에 관한 추억을 꺼내 보입니다. 여름방학이 아니어도 여름방학인 것처럼 좋은 날이었던 바닷가마을엔 싱싱한 생명이 살아 숨 쉬어요. 여전히 "내 강아지"라 부르는 할머니의 정겨운 제주 사투리에 미소 지으며 천천히 장을 넘겼습니다.

해녀로 60년을 산 할머니는 가족들이 만류해도 성실히 바다로 출근합니다. '마음이 출렁출렁해서 돈도 벗도 있는 바다가 좋다'는 그녀의 얼굴엔 생기가 돌지요. 바다가 무섭지 않냐는 질문에도 '무서울 게 뭐 있냐'는 무심해도 묵직한 답은 작가에게 묘한 용기를 줍니다. 무서웠던 빈 종이를 바로 보고 색을 채우도록요.

눈을 감고 있는 여름은 잠을 자는 것이 아니구나

짙어지고 짙어지는 풀내음을 맡고 있는 거야

땀을 뻘뻘 흘리다 바람이 불어와 가만히,

그 바람을 맡고 있는 거야

책을 덮자 '살아이시면 다 살아진다'는 어느 제주 할머니의 인터뷰가 생각났어요. 삶의 무게가 버거운 어른이는 그 말이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리기만 하네요. 해가 저물수록 순진하게 꿈꿀 수 없는 미래에 대해 체념만 늘어갑니다. 아마 광활한 자유를 누리던 어린 시절이 그립기 때문일 테지요. 루돌프 빨간 코를 하고 그리움의 바다에 젖어봅니다. 자꾸 그때를 떠올리니 코가 점점 시큰해지네요.

제주에 살아도 도심 밖을 벗어나기란 어렵습니다. 그래서 숲과 바다가 자주 등장하는 <효리네 민박>의 영상미를 유독 좋아했는데요. 저는 아이유가 나왔던 여름 편을 여러 번 돌려봤어요.

가끔 위로가 필요할 때, 해당 시즌의 유튜브 클립을 찾는데요. 지치기 쉬운 7월이니 <효리네 민박> 위로 스페셜을 소개할게요.

🏡<효리네 민박> 보기

* 출처: JTBC Voyage

📚 𝙻𝚒𝚋𝚛𝚊𝚛𝚢 𝙲𝚊𝚛𝚍

대출 희망합니다!

* 사진 출처: 교보문고, 고스트프레스

7월 4주 차에 신청한 희망도서는 『홀로』, 『하지 않는 삶』, 『환승 인간』, 『배움의 배신』, 《유령들 3호》입니다.

📗 다니엘 슈라이버 『홀로』 (2023, 바다출판사)

이상하게 사람들은 이유 없이 혼자 있고 싶을 때를 가만두지 않습니다. 슈라이버는 외로움이 특정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질병`이 아니라 말해요. 그는 온몸으로 겪은 숱한 외로움을 통해 자신과 화해하며 삶의 정수를 꿰뚫죠. 혼자 있는 시간을 기필코 사수하는 분들에게 너무도 안성맞춤인 책일 것 같아요.

📗 히조 『하지 않는 삶』 (2023, 웨일북)

유튜버 히조가 시행착오 끝에 완성한 단단한 삶의 태도를 정리한 글입니다. 하루가 와이파이와 체크리스트 안에서만 머무는 건 아닌지 되짚어 보죠. 사람의 에너지는 유한하기에, 때론 숨을 고르며 균형을 맞추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빼곡한 체크리스트를 적는다고 삶은 나아지지 않아요. 진짜 중요한 것은 테두리 바깥에 있으니까요.

📗 한정현 『환승 인간』 (2023, 작가정신)

작가가 지금껏 자신을 거쳐 간 수많은 '이름'들에 관한 이야기들과 채널예스에 '한정현의 영화적인 순간'이란 제목으로 연재한 칼럼들을 엮은 책입니다. 여러 이름을 뒤집어쓰며 인생의 무게를 나눴던 그는 덕분에 자유롭고 편안하게 숨 쉴 수 있었다고 해요. 최후의 환승지 '자기 자신'으로 오롯이 서기 위한 지난 노력이 궁금하네요.

📗 엄태주 『배움의 배신』 (2023, 엣눈북스)

삶이 괴롭고 힘들면 '배움' 안으로 숨어든 태주. 그녀는 문득 공부하고 배워 왔던 것들이 무용해지는 순간을 맞이해요. '뭔가를 배우고 있는 나'가 주는 위안은 돌연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혼란을 일으키죠. 저도 여전히 배움을 도피처로 삼아 도망치곤 하는데요. 과연 태주는 어떤 해답을 찾았을까요.

📗 《유령들 3호》 (2023, 고스트프레스)

민음사 문학 편집자이자 작가인 김화진이 만든 독립 문학잡지 《유령들》. 3호에선 권혜영, 김화진의 소설과 문보영의 시, 영화평론가 김병규의 평론. 소설가 김사과, 시인 김유림의 에세이 등을 만날 수 있어요. 좋아하는 것만 담고 할 수 있는 것까지만 한 소박한 문학잡지인 귀여운 《유령들》이 오래오래 발간되길 응원합니다.

* 도서 설명은 출판사 서평을 참고해 작성했어요.
* 빨간색 글씨를 클릭하면 자세한 도서 정보를 볼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