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호. 그럼에도 사랑으로

2023. 8. 21.

📚 21호. 그럼에도 사랑으로

레터는 한 주 쉬었지만, 저는 제대로 쉬진 못했습니다. 불거지는 여러 문제와 일들을 처리하는 것만으로 시간이 빠듯했거든요. 복잡하게 얽힌 관계 속에서 부당함을 목격하며 심한 분노도 느꼈죠. 코로나에 걸려 골골대던 5일이 천국이었다, 여겨질 정도였어요.

글이고 친구고 직장이고 모두 팽개치고 싶은 순간을 버틴 건, 사람 덕분입니다. 놓아버린 풍선을 잡아 다시 손에 쥐어 주는 다정한 마음 덕분에 한고비 넘겼어요. 원인은 해결되지 못했지만, 포기하진 않을 겁니다. 그럼에도 사랑이 이긴다고 알려준 이들이 있으니까요.

📅 𝙱𝚘𝚘𝚔 𝙲𝚊𝚕𝚎𝚗𝚍𝚊𝚛

이달의 독서달력

2023년 8월 4주 차 독서달력입니다. 오늘날 노동 현장에 대한 냉철한 분석 『우리는 출근하지 않는다』(2023, 반비), 자기만의 언어를 만나기까지 『내가 말하고 있잖아』(2020, 민음사), 이슬아가 수집한 뭉클한 인생 큐레이션 『끝내주는 인생』(2023, 디플롯), 꿈을 좇던 청춘의 유감(有感)한 문장들 『청춘유감』(2023, 문학동네네), 쓰고 찍으며 발견하는 일상의 특별함 『평범한 날들을 근사하게 기록하는 법』(2023, 인디고), 여름 여행에서 길어 올린 소중한 기억 『지금 난 여름에 있어』(2021, 사랑으로), 인생 만렙을 위해 해내는 우리들의 이야기 『우리는 매일을 헤매고, 해내고』(2021, 한겨레출판사), 조금이나마 빛이었던 사랑을 향한 답신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2023, 문학동네) 까지 총 8권을 완독했습니다.

* 빨간색 글씨를 클릭하면 자세한 도서 정보를 볼 수 있어요.

📝 𝚂𝚝𝚛𝚊𝚢 𝚝𝚑𝚘𝚞𝚐𝚑𝚝𝚜

쉼표와 따옴표

임현주 『우리는 매일을 헤매고, 해내고』中

7월에 번아웃과 다시 마주했습니다. 업무에 집중을 못 하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게 심상찮다고 느낀 참이었죠. 직감은 정확했어요.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땐, 선생님 앞에서 알알이 굵은 눈물을 쏟아냈죠. 예상치 못한 눈물에 당황하면서도, 내 안에 꽉꽉 누른 고통과 억울함이 가득 차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애썼는데 속수무책으로 다시 무너진 상황에 앞으로 견뎌야 할 시간이 까마득하게 다가왔어요.

왜 번아웃이 다시 찾아왔을까요? 감정을 내려놓고 이성적으로 분석해 봤습니다.

첫째, 불안지수가 높습니다. 생각 외로 우울수치는 높지 않았어요. 무시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불안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았지요. 저는 완벽주의 성향과 예민한 기질, 그리고 계획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데요. 때문에 변화에 유독 취약해요. 하필 제가 맡게 된 직무가 ‘변화의 연속’이란 문제가 있었죠. 소진되는 환경에 있으니 자주 무너진 거예요.

둘째, 직무가 맞지 않았습니다. 되도록 지금의 일을 안 하려 했지만, 사회생활이 원하는 대로 되던가요. 입사 후, 제가 선택한 직무가 아닌 다른 직무를 배정받아 삶이 꼬이기 시작했어요. 예전에 경험한 불안한 상황과 매우 흡사한 루틴을 다시 경험하며, 번아웃의 늪으로 빠진 거죠.

셋째, 바뀌지 않는 조직시스템입니다. 어려움을 호소해도 '너 아님 누가 해'라며 업무분장에는 큰 변화가 없었어요. 오랜 내부 갈등과 불합리한 상황을 번번이 목격하며, 점점 신경질적으로 변해갔죠.

매주 상담을 받으며 마음이 무너지고 재건되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내 일'이니 열심히 하려는데 자꾸만 짓밟히니 힘들었어요. 체념의 기운이 스미던 때, 이슬아 작가의 『끝내주는 인생』에서 닮고 싶은 문장을 만났습니다.

나는 내가 고생 한복판에서도 이렇게 농담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희망한다.

이슬아 『끝내주는 인생』中

아쉽지 않고 아프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겠어요. 그럼에도 나아가는 사람이 결국 성장하는 거겠지요. 과거와 현재의 번아웃은 성격이 달라요. 과거엔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 어두운 터널을 혼자서 걸었는데, 지금은 회사 안팎에서 함께 고민하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얼마 전, 동료에게 너무 힘들어서 정신과에 다닌다고 고백했어요. 그러니 이런 말을 해주더군요. "마니님은 나약해서 간 게 아니라 자신을 조절하기 위해 간 사람 같아요. 힘든 와중에도 책임감 있게 업무를 수행하는 걸 보면 '조용히 강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요."

머리가 띵했습니다. 몸집이 왜소하고 또래에 비해 어린 티가 나는 외모 때문에 보호해야 하는 어린애 취급을 종종 당했거든요. 그와 정반대로 '강하다'는 표현을 써주니 '잘한다'는 칭찬보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나는 그녀가 나를 약하고 어리숙한 사람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싫었고,

내가 꼭 오늘처럼 당하고만 살지는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中

거침없이 용기를 내어 나아갈 힘이 생겼습니다. 더 강하게 표현하며, 이제는 타인이 내 주권을 양도하게 두지만은 않을 거예요. 과거보다 더 강인해졌으니까요. 이번 주도 눈 한번 질끈 감고 다시 출근해 봅니다.

💬 𝙱𝚘𝚘𝚔 𝚌𝚘𝚖𝚖𝚎𝚗𝚝

이주의 독서리뷰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2023, 문학동네)

최은영 작가의 신간이 발간된단 소식을 듣고 뛸 듯이 기뻤습니다. 지면에서 읽은 단편들을 한 권의 책으로 읽을 수 있게 되니 어떤 부분이 수정되었을지, 이전에 느꼈던 감상과 다른 점이 있을지 궁금했지요. 상상만으로도 이미 완독한 것 같았어요.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그 시절 나를 살게 했던 사랑에 대해 다룹니다. 연인이나 부모의 사랑처럼 뻔한 게 아니라 포괄적이고 범위가 넓은 사랑을 말이에요. 공통점은 그 시기를 벗어나면 멀어진단 겁니다. 제목처럼 아주 희미하게, 빛보다 옅은 색의 실선으로 끊기지 않고 확장되는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단단한지 보여주지요.

나는 영원히 널 사랑할 거야. 네가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결국 찢어버릴 편지를 쓰는 마음이라도 것도 세상에는 존재하는구나.

마지막 문장을 쓰고 나는 이 편지를 없애려 해.

최은영 「답신」中

소설마다 적고 싶은 말들이 많지만, 수록작 「일 년」과 「답신」은 꼭 읽어보시길 바라요. 「일 년」은 작가의 전매특허인 오묘한 감정을 톺아보는 능력이 한껏 발휘된 작품이에요. 친했던 직장 동료가 어떻게 멀어지는지, 정규직과 계약직이란 위치에서 생생하게 그려내죠. 「답신」은 그루밍 범죄를 겪은 인물들의 감정을 세심하게 들여다보며, 서늘한 분노와 체념을 넘나듭니다. 타 문예지에서 처음 「답신」을 읽었을 땐, 최은영이 쓴 작품이 아닌 줄 알았을 만큼 충격적인 작품이에요.

모든 작품에는 일상에 만연한 폭력이 기저에 깔려있어요. 이에 굴하지 않고 인물들은 이탈한 궤도를 제 속도로 찾아갑니다. 폭력이 순종적으로 길들이려 하더라도, 자신의 삶을 집요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랑의 힘으로 이겨내요.

어쩌면 그때의 나는 막연하게나마 그녀를 따라가고 싶었던 것 같다.

나와 닮은 누군가가 등불을 들고 내 앞에서 걸어주고,

내가 발을 디딜 곳이 허공이 아니라는 사실만이라도 알려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中

안팎으로 소란스러운 나날이지만, 그럼에도 사랑으로 저울의 기울기를 영점으로 맞춰야 합니다. 나의 온도가 누군가에겐 차갑거나 뜨거울 수 있다는 걸 인지한 누군가가 발자국을 남겼을 거예요. 우린 그들이 남긴 마음의 자국 위에 선명함을 덧칠해서 걸어가면 됩니다.

출판사 문학동네는 신간을 발표하는 작가들의 플레이리스트 영상을 올려줍니다. 자신의 책에 어울리는 음악을 작가들이 직접 선정해, 더욱 풍부한 감상을 느끼게 해주죠.

소설가 최은영도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와 함께 듣는 음악을 골랐어요. 한 시절 내가 건네 받은 사랑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될 때, 음악은 어떤 분위기일까요?

💙소설가 최은영의 추천곡 듣기

* 출처: 문학동네

📚 𝙻𝚒𝚋𝚛𝚊𝚛𝚢 𝙲𝚊𝚛𝚍

대출 희망합니다!

* 사진 출처: 교보문고

8월 4주 차에 신청한 희망도서는 『에세이즘』, 『공룡의 이동 경로』, 『작은 수집, 스몰컬렉팅』, 『공간디깅』, 『여행 혹은 여행처럼』 입니다.

📗 브라이언 딜런 『에세이즘』 (2023, 카라칼)

에세이는 글쓴이의 내밀한 이야기가 여과없이 드러나는 글입니다. 때론 일기 같은 글도 더러 존재하죠. 딜런은 에세이의 본질은 태도에 있다며, 자신이 사랑하는 에세이스트를 신중하고 정확하게 독해합니다. 에세이를, 문학을 애정한다면 깊고 다채롭고 자유분방한 에세이즘을 읽어보세요.

📗 김화진 『공룡의 이동 경로』 (2023, 스위밍꿀)

『나주에 대하여』로 마음 탐구자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 김화진 작가의 신작 소설집입니다. 특히 '친구 관계'를 다룬 연작 소설로, 마음의 이동 경로를 가만히 들여다보죠. 인물들은 살아 움직이는 마음을 아픈 와중에도 편집없이 묵묵히 직시해요. 딱딱해지지 말고, 생생하게 삶 쪽으로 나아가는 일. 잊어버리기 쉬운 태도를 다시 돌아봅니다.

📗 영민 『작은 수집, 스몰컬렉팅』 (2023, 휴머니스트)

생활의 작은 조각들을 수집해 기록으로 만드는 '스몰컬렉팅'. 유튜브, 독립출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영민 작가가 제안하는 기록법입니다. 작가는 다양한 예시와 방법으로 감각을 키울 수 있게 도와줘요. 수집과 창작은 나만의 언어를 갖게 해줍니다. 내게 의미 있는 것을 수집하여 하나뿐인 책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 더블랭크 편집팀 『공간디깅』 (2023, 스페이스뱅크)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공간 전문 뉴스레터를 발행한 더블랭크 편집팀이 펴낸 두 번째 공간 이야기입니다. 디깅한 13개의 사랑받는 공간의 매력을 담아낸 게 특징이죠. 기획, 운영, 브랜딩까지 각 공간에 담긴 철학을 들여다볼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해요. 공간 기획에 관심 있는 분들께 특히 추천합니다.

📗 정혜윤 『여행 혹은 여행처럼』 (2015, 난다)

제가 너무 좋아하는 에세이스트 CBS 정혜윤 PD의 '잘 몰랐던' 숨은 인터뷰집입니다. 얼마 전, 한 모임에서 추천받아 알게 된 책이에요. 자기 자신을 시작으로 여러 사람을 인터뷰하며 그들의 삶의 방식이 놀랍게도 우리가 아는, 떠나본 사람은 다 경험해 본 적 있는 여행과 닮아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여러분을 계속 걷게 하는 건 무엇인가요? 이 책을 읽으며 저도 찾고 싶네요.

* 도서 설명은 출판사 서평을 참고해 작성했어요.
* 빨간색 글씨를 클릭하면 자세한 도서 정보를 볼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