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조에서 유레카를 외친 아르키메데스 심정도 이랬을까요. 집안 곳곳은 물론 구독 서재, 도서관까지 다 뒤져도 나오지 않던 리뷰 도서는 어이없게도 자려고 누운 침대에서 툭, 튀어나왔어요. 문보영 시인을 처음 알게 된 에세이 『준최선의 롱런』은 당장 필요한 처방이었죠.

 시인은 말합니다. 준최선의 순간을 기록한 일기가 모여 지금의 책이 되었다고요. 그는 '이만하면 됐다'를 되뇌며 일상을 잘 살아내는 예술가가 목표라 말합니다. 그렇게 평범함에 집중하지요. 사실 평범은 여러 곳에서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소진과 회복을 넘나들 바엔 차라리 전력을 다하지 않는 편이 낫죠.

 일기 딜리버리, 일기 쓰기, 시 쓰기, 브이로그 그리고 댄스까지. 섭렵해야 할 것들이 잔뜩 쌓인 그는 대충하는 것은 아닌데 최선을 다하는 것도 아니고 그 사이에서 묵묵하게 롱런하기(p. 34)를 모토로 뿌듯한 삶을 살아갑니다. 특유의 경쾌한 문체로 상상력 가득한 이야기를 쏟아내죠. 존버의 삶이 아닌 어물쩍 넘어가기를 도전하니 나온 결과입니다.

최선은 관성을 깨는 행위이기 때문에 관성이나 습관이 될 수 없지만, 준최선은 관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준최선이 근육에 배면 어떤 일을 해도 디폴트 값으로 준최선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p. 34)

 우린 모든 일들에 최선을 다할 순 없습니다. 초인적인 능력도 특출난 재능도 없는 전 마감을 쳐내기 위해 그를 따라 준최선의 힘을 빌려봅니다. 내성이 떨어지는 일들을 그만두고 약간의 인간미를 보여주길 택했어요. 세상이 아니라, 사람들이 아니라,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거겠지(p. 53)라고 확대된 학대 대상을 축소하면서요.

 문보영의 유쾌한 반란을 읽으니,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우리가 진짜 가져야 할 용기는 출발선에 설 용기가 아닌 준최선의 용기가 아닐까요. 나도 모르게 어딘가 아프고 힘들다면, 도파민이 싹 돌지 않으면 한 것 같지도 않다면 이 책을 권할게요. 대충도 최선도 아닌 준최선을요.

📗 오은 외 7인 『낯설거나 새로운』 (2024, 북다)

 이 책은 교보문고의 문화 프로젝트 <브랜드책방>에서만 만날 수 있는 한정판 앤솔러지입니다. 시인과 소설가, 에세이스트, 칼럼니스트... 남다른 감각의 여덟 작가가 뜻밖의 길에 대한 발견을 글로 묶었죠. 때론 묵직하고 유쾌하게 다가오는 새로운 시선들은 언제 꺼내 보아도 매번 다른 재미를 줍니다. 정체 모를 장르불문 산문집을 얼른 만나보고 싶네요.

📗 이주호 외 7인 『봄, 시작하는 마음』 (2024, 책폴)

 봄처럼 다채로운 시작의 마음을 담아낸 여덟 편의 에세이입니다. 출발선에 다시 선 용기와 다정의 순간들이 담겨있죠. 새롭고 설레면서도 너무 두려워서 빨리 외면하고 싶었던 '시작'의 나날, 기억나나요. 찬란하고 잔혹했던 우리의 처음을 떠올리며 읽으면 다시 출발선에 설 용기가 날 거예요.

📗 조소현 『서른의 불만 마흔의 불안』 (2024, 어크로스)

 19년간 피처 에디터로 일을 해온 저자가 서른에서 마흔이란 불확실한 시간에 안부 인사를 전합니다. 사회의 나온 후 삶의 기본값은 불안이었고, 세부 필터를 거치면 온통 불만이었단 그는 이들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기도 했다고 고백해요. 불만과 불안, 꺼끌꺼끌해도 씹다 보면 고소해지는 맛을 음미하는 법을 배워보는 건 어떨까요. 

📗 쩡찌 『땅콩일기 3』 (2024, 아침달)

 슬픔 속에서도 다정한 빛을 발견하는 작가, 쩡찌의 그림 에세이 3편입니다. 이번 편은 2022년부터 2023년까지 연재된 원고를 엮었어요. 그는 여전히 사람에 대한 사랑을 말합니다. 그것이 슬프고 고통스러울지라도 그럼에도 사랑을 멈출 수 없는 이유를 전하지요. 그가 그려낸 다정함의 산물들은 노력으로 쌓아 올린 무해의 세계입니다. 전작도 즐겁게 읽은 터라 이번 신작도 기대가 많이 되네요.

📗 지혜 『인사는 잠깐인데 우리는 오래 헤어진다』 (2024, 엣눈북스)

 저자는 25년 동안 방 없이 살았어요. 힘들고 슬픈 동시에 기쁘고 즐거운 모든 감정을 알게 해 준 방 없는 삶. 그는 세 번의 이사, 세 곳의 집, 세 사람의 죽음을 바탕으로 마음의 고향을 하나로 확정하지 않아요. 덕분에 그가 자신만의 방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 마음으로 확장되죠. 어제보단 한 뻠 확장된 마음, 내밀한 마음속으로 걸어가 보고 싶어요. 

상처도 너무 가까이서 보면 그게 뭔지 모르게 되어 버려.

사랑도 너무 가까이서 보면 그게 뭔지 모르게 되어 버려.

가끔은 내가 나의 불행을 내동댕이칠 필요도 있어.

닥치는 대로 살고 잊어버리자

문보영 『준최선의 롱런』 中

2월 월간 결산은 3월 5일에 발송됩니다.

마니브러리 수서 목록을 읽다가 봄에 만나요💌